부족국가 시대

우리 민족의 조상은 기원전 3000년~2000년 무렵 신석기 시대로부터 시작되는데 기원전 2333년 단군조선부터 삼국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부족국가 시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씨름에 대한 자취는 “치우희” 라는 씨름의 명칭이다.
중국의 “25史”와 우리나라 “한단고기”중 “삼성기”상ㆍ하 편에 보면 치우천왕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전설적인 군신이며 무신인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중국의 “후한서”와 우리나라의 “조선상고사”에 씨름에 관한 명칭 “각저희”와 “씰흠”을 사용하며 씨름에 관한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는 삼국시대 중 유일하게 벽화에서 씨름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의 옛 도읍지인 만주 통화성에 있는 각저총의 벽화와 장천 1호 분의 벽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발견된 이 두 벽화만을 볼 때도 고구려인들의 생활에서 씨름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신라는 “삼국사기”열전 중 김유신의 대목에 유신과 춘추공이 씨름을 하다가 옷고름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발견된 정도이고, 백제는 백제의 씨름 방식이 일본으로 전파 되었다는 것이 일본과 양국의 일반적인 학설이다.
삼국시대는 앞으로 더욱 많은 역사적인 자료를 찾아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씨름은 15세기 조선 세종 때 편찬된 “고려사”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충숙왕(1330년)과 충혜왕(1343년)시대에는 상ㆍ하의 예가 없을 정도로 왕을 위시한 신하 등 용사가 씨름을 즐겼는데 이때는 원나라의 지배아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씨름을 통하여 민족 자주성 회복의 염원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조선 초.중기의 씨름에 관한 문헌상의 자료로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다소 찾아 볼 수 있고,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군사들로 하여금 씨름을 겨루게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선 후기에는 “송경지”, “동국세시기”, “경도잡지”, “해동죽지”등의 문헌 중에 씨름에 관하여 많이 서술되고 있다. 또한 그림으로도 몇 점 남아 있는데 단원의 풍속도, 기산의 풍속화, 유숙의 대쾌도 등은 귀중한 사료이다. 그 외 구한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동화사 영산전에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다.

스포츠로써의 근대화

씨름은 소규모의 지역적인 지방 씨름이 성행되다가 1912년 10월 유각권 클럽(구락부)의 주관으로 서울 단성사 극장에서 대회다운 면모를 갖춘 씨름대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1915년 1월 광무대 극장 주최로 광무대 극장에서 4주 동안 씨름대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 후 씨름에 대한 열기와 관심이 높아지면서 1927년 ‘조선씨름협회’가 창단되었고, 그 해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가 휘문고등학교에서 개최되었으나 1937년 7월 ‘제10회 전조선씨름대회’가 최종대회가 되었다.
1936년 ‘제1회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조선일보사 강당에서 개최되었으나, 이 대회 역시 1941년 ‘제6회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마친 후 중단되었다가 1946년 조선씨름협회에서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개명한 후, 1947년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의 명칭 또한 ‘전국씨름선수권대회’로 바꿔 현재까지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씨름대회의 체급 구분은 1956년 열린 ‘제12회 전국씨름선수권대회’부터 시행되었다. 당시 대회는 중량급(71.3kg 이상), 경량급(71.3kg 이하)으로 구분하여 진행되었으나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5체급으로 변경되었고, 또다시 3체급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7체급(경장급, 소장급, 청장급, 용장급, 용사급, 역사급, 장사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1959년 ‘제1회 전국장사씨름대회’가 신설되었으나 6회로 대회가 없어졌고, 1972년에는 ‘제1회 KBS배쟁탈전국장사대회’가 시작되었으나 1994년 23회로 막을 내리는 등 여러 대회가 신설되었다가 막을 내렸다. 현재 대한씨름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는 ‘전국씨름선수권대회’외에 1964년에 창설된 ‘대통령기 전국장사씨름대회’를 포함하여 매년 전문체육대회 9회, 민속씨름대회 5회, 생활체육대회 5회의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민속씨름(프로씨름)

민속씨름의 탄생은 1982년 4월 민속씨름위원회가 발족되면서부터이다. 1983년 출범을 알린 민속씨름은 그해 4월 14일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가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대성황을 이뤘다.
특히, 민속씨름은 출범 당시에는 태백급, 금강급, 한라급, 백두급 4체급으로 시작했지만, 1987년 12월 태백급을 없앤 3체급으로 운영하다 1991년 5월에는 금강급까지 없애 백두급(100kg 이상), 한라급(100kg 이하)만 운영하고 단체전을 신설하였다.
민속씨름 탄생 이후 씨름이 점차 인기를 더해가면서 일양약품, 보해양조, 럭키증권, 현대, 삼익가구, 부산조흥금고, 인천 등의 팀이 창단되어 합류하였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잇단 팀의 해체로 인해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마지막 남은 현대 팀이 한국씨름연맹에서 회원 탈퇴를 하며 실업팀으로 전향함으로써 민속씨름을 관장하던 한국씨름연맹은 씨름단(회원단체)없이 단체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2017년 4월 대한씨름협회는 민속씨름위원회를 신설하고, 팀 창단을 통한 민속씨름 재건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오늘의 현황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씨름의 부흥과 재도약을 위하여 2016년 3월 전국씨름연합회와 대한씨름협회가 통합하였고 ‘통합씨름협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17년 5월 씨름의 정통성과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다시 명칭을 ‘대한씨름협회’로 변경하였다.
대한씨름협회는 ‘2016 추석장사씨름대회’와 ‘2016 천하장사씨름대축제’를 씨름의 성지였던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최하였고, 씨름 팬들의 향수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와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성공적인 대회를 치렀다.
이뿐만 아니라 2016년 씨름진흥TF팀을 운영하여 대한씨름협회의 새로운 CI와 캐릭터를 개발하였고, 씨름 디자인 개선 사업을 통해 장사복·심판복 등을 개선하여 새로운 씨름의 모습을 선보였다.
여기에 좀 더 세분되고, 조직적인 운영을 위해 민속씨름위원회, 여자씨름위원회, 스포츠공정위원회 등 각종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씨름은 2015년 4월 씨름의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2017년 1월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었다. 2018년 씨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남북공동등재되어 우리나라뿐만아니라 전 세계에 진출하여 ‘씨름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